시의 곳간에 촛불 켜기
사람의 뇌 속에는 각자가 선호하는 영역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돈과 권력에 대한 소유의 영역, 스포츠나 운동 경기를 즐기는 취미의 영역, 학문을 연구하고 탐구하려는 지적 영역,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미적 영역 등. 나의 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여행과 독서인데 그걸 더 세분화했을 때 시의 영역이 있다. 나는 이를 ‘시의 곳간’이라 부른다.
어언 40여 년을 교단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며 독서를 책밥으로 여기고 하루 세 끼 밥을 먹듯 책읽기를 꾸준하게 해 왔다. 여기에 더해 십여 년 전부터 함께 해 온 게 바로 시 낭송과 필사였다. 숨 막히게 더운 여름을 지나고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선선함을 느끼는 가을이 시작되면 거의 자동으로 뇌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시의 곳간에 촛불이 켜진다. (나는 시를 필사하고 암송하는 일을 ‘시의 곳간에 촛불 켜기’라고 스스로 이름 붙였다.)
박완서 작가가 살아 생전 100편 이상의 시를 암송하셨다는데 그렇게까지 못하더라도 해 지는 가을날, 문득 고즈넉한 저녁 산책길에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나 김소월의 ‘초혼’ 정도는 나지막이 읊을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시 암송과 필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외운 시가 이제 겨우 20여 편 정도 밖에는 안 되지만 나는 이 시들을 시의 곳간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가끔 꺼내곤 한다. 특히나 요즘 같은 가을날에는 부쩍 시가 더 그리워지는데 그럴 때면 시의 곳간을 살며시 열어 촛불을 켠다.
홍성군보건소에서 건강수명 연장 텐 업(10UP) 프로젝트로 건강 미션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다. 이름하여 ‘건강도시(詩)를 쓰다’가 그것이다. 미션은 하루 한 편 시를 필사하는 것이다. 10월 한 달 동안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선정하여 직접 손 글씨로 필사한 후 인증사진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기획을 한 홍성군 보건소, 정말 멋지다.
시 필사는 손끝의 미세한 근육을 움직이게 되고 집중력을 높여주며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어 그야말로 건강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시를 쓴다는 것은 매우 품격 있고 우아한 일이다. 많은 홍성 군민들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여 깊어 가는 가을을 누렸으면 한다.
ⓒ 홍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획·특집 담당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