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터널 같던 그 시절···“지금은 강해졌죠”
홍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센터장 조현정)가 지원하는 ‘학교 밖 청소년’은 110명 정도이고, 지역의 학교 밖 청소년은 그 두 배 이상으로 추정된다. 학교 밖은 실패의 결과가 아닌 행복의 과정이다. 이들은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홍성신문은 월 1회 학교 밖으로 나온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살다 보면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시기가 있다. 힘듦을 겪고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과제일 것이다. ‘학교 밖, 우리 곁’ 연재의 열두 번째 주인공인 유혁은 주변의 도움과 스스로 노력으로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의 이야기는 지난 9월의 어느 주말 홍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이유를 몰랐던 힘듦···용감히 손 내밀어
홍성 출신인 유혁(27)은 홍남초~홍주중~홍성공고를 나왔으며, 가족으로는 부모님과 두 살 아래 남동생이 있다. 지금은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으로 성장한 유혁 씨가 센터를 찾은 건 고등학교 때로, 센터가 아직 광천에 있던 시절이다.
유혁은 “무기력하고 힘들었는데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센터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라며 “당시엔 그 고민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한 달에 한두 번쯤 와 한 시간 정도 상담받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선명하진 않지만, ‘왜 이럴까요?’란 질문을 자주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학창 시절에 대해서도 물었다. 유혁은 “초등학교 때는 그냥 보통 아이였다. 공부도 중간 정도였다. 같이 노는 친구는 서너 명, 친한 친구는 한두 명쯤 있었다”며 “중학교는 그냥 초등학교 생활이 이어진 느낌”이라고 답했다. 이어 “고등학교 때는, 이른바 ‘안 좋은 아이들’하고 어울리기도 했다. 선생님이 전기기능사 자격증 시험 책도 주셨는데 따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라면서도 “그래도 사고는 안 쳤다”고 보탰다.
잠시 옛 생각에 빠졌던 유혁은 “돌아보면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지금의 기억을 안고 돌아간다면 공부든 뭐든 더 열심히 할 것 같다”며 “여러 친구를 사귀면서 경험과 추억을 얻었다. 사람을 대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운 시기였다”고 더했다.
30대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과 그 시절의 차이를 묻자 “그때는 힘든 걸 고민하면서도 해결하려는 노력은 안 했다. 지금은 일단 버티고, 고민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그래도 안 되면 또 버틴다”며 “그때보다는 정신적으로 강해진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그때 날 힘들게 했던 것들은 많이 해결했다. 지금은 적당한 고민과 걱정을 하며 남들처럼 잘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별일 없이 사는 일상···“10년 후엔 정착”
유혁 씨는 현재 아산의 한 기업에서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다. 들어간 지 1년쯤 된 그곳은 첫 직장이기도 하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좀 놀기도 하고, 이것저것 해보려 준비도 했다. 그러다 지금 직장에 다니게 된 것”이라며 “오전 7시쯤 일어나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다. 기숙사에서 좀 쉬다 헬스장에 가 1시간쯤 운동한다. 그리고 자정쯤 잠자리에 든다”고 일상을 전했다.
여가 생활에 관해 묻자 주로 책을 읽는다는 유혁은 성장 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추천했다. 그는 “그 책을 읽으면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뭔가 생각과 감정이 통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1968년 출간 후 전 세계 수천만 독자의 마음을 울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는 독자는 꼬마 악동 제제와 함께 세상과 부딪치고 화해하면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고(故) 기형도 시인은 “이 책의 감동은 ‘철듦’에 있지 않다. 반대로 ‘철들기 전의 세계’에 대한 미칠 듯한 그리움에 있다”고 극찬했고, 영화배우 유지태는 “혼자 책 읽는 시간이 많았던 어린 시절, 읽으며 일곱 번 울었을 정도로 감동을 받은 소설”이라고 추억했다.
유혁 씨가 다니는 회사는 주말 근무는 선택이라고 한다. 그는 “웬만하면 참여하는 편”이라며 “쉬면 보통 홍성에 와 친구들을 만난다. 친구들과는 노래방에 가기도 하고, 함께 손 세차도 한다. 물론 차도 마시고 밥도 먹는다. 가끔은 1박2일 여행도 가는데 대구에서 먹은 꿀떡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요즘은 힘들 때 어떻게 하냐고 묻자 “기숙사에서 쉬거나, 혼자 카페에 가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고향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청하자 “스스로 노력하되 한계를 느낀다면 조언과 상담을 받길 바란다”며 “무엇보다 본인이 강해져야 한다. 운동이든 그림이든 취미를 찾아서 무사히 그 시기를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학교 밖, 우리 곁’ 연재의 다른 주인공들처럼 ‘10년 후의 나’에 대해서도 물었다. 유혁은 “자리를 잡았을 것 같다. 회사에 다니며 친구도 만나고 그럴 것 같다. 마흔 전에는 결혼도 하고 싶다”며 “무엇보다 지금 이 생활이 그때도 무너지지 않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가족의 힘도 컸다. 유혁은 “꼭 더 나이 많은 사람에게만 배우는 건 아닌 거 같다. 동생과 대화하며 많이 배웠다”며 “내가 못 하는 생각을 한다. 동생만의 생각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도 내 말을 잘 들어주시고, 해결 방안을 주시기도 한다. 요즘엔 전화를 자주 못 드려 죄송할 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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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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