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인가, 余何亭이 묻는 것
지금까지 우리는 여하정 주련의 여러 구절을 하나씩 따라 읽어 왔다. 마지막 회에서는 길게 풀어 설명하기보다, 열두 구절 전체를 한 번에 다시 읽어 보려 한다. 여하정 주련은 여러 고전 문구를 오언 형식에 맞추어 압축하고 변용한 대련들을 하나로 엮은 것이다. 짧은 구절들 안에 관아의 공무, 산수의 위안, 물가의 성찰, 사람 사이의 교유, 그리고 마음의 즐거움이 함께 들어 있다.
環滁也皆山 / 於此豈無佳(둘러보면 모두 산뿐이지만, 이곳에 어찌 아름다움이 없겠는가). 余方有公事 / 捨此官何求(나는 바야흐로 공무가 있다. 이 관직을 버리고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作小樓二間 / 懷伊水中央(작은 누대 두 칸을 짓고, 마음은 물 한가운데를 향한다). 樹環焉泉懸 / 開方塘半畝(나무는 둘러서고 샘물은 매달리듯 흐르며, 네모난 못은 거울처럼 열린다).
九日湖之湄 / 一人斗以南(아흐레를 호수 물가에서 보냈고, 북두 이남에는 오직 한 사람뿐이다). 賓主東南美 / 其必有所樂(손님과 주인이 동남의 아름다움을 다하였으니, 그 안에는 반드시 즐기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 열두 구절은 단순히 정자의 경치를 칭찬한 말이 아니다. 처음 두 구절은 먼저 여하정을 둘러싼 세계를 연다. 둘러보면 산뿐인 듯하지만, 그 적막한 자리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다음 두 구절은 그 자리에 선 사람을 불러낸다. 그는 세상 밖으로 물러난 은자가 아니라 공무를 맡은 관인이다. 그러므로 여하정의 아름다움은 현실을 잊은 한가로움이 아니라, 공무의 무게 속에서 얻은 잠깐의 여백이다.
이어서 주련은 그 여백이 머무는 자리를 마련한다. 작은 누대 두 칸이 세워지고, 마음은 물 한가운데를 향한다. 나무가 둘러서고 샘물이 흐르며, 네모난 못은 거울처럼 열린다. 여기서 산수는 멀리 있는 경치가 아니라 관아 곁에 마련된 마음의 자리이다. 물가와 연못은 바깥 풍경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다음 주련은 그 자리의 사람과 시간을 말한다. 아흐레를 호수 물가에서 보냈다는 말은 단순한 유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물가에 머문 시간은 풍류의 시간이면서, 공무를 맡은 사람이 현실을 가까이 살피는 시간이기도 하다. “북두 이남에는 오직 한 사람뿐이다”라는 구절은 그 사람에게 요구되는 무게를 드러낸다. 산수 속에 머물되 자신의 직분과 도리를 잊지 말라는 자각이다.
마지막 두 구절에서 주련은 사람 사이의 만남과 마음의 즐거움으로 귀결된다. 손님과 주인이 함께할 때 공간은 비로소 깊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반드시 즐기는 바가 있다. 여하정의 즐거움은 세상을 버린 은거의 낙이 아니다. 공무와 현실 속에서도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의 조용한 낙이다.
■ 원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이 주련의 솜씨는 원구와 나란히 놓아 보면 드러난다. 구양수는 「環滁皆山也」라 하였는데 주련은 「環滁也皆山」이라 하였다. 也를 가운데로 옮겨 오언에 맞추면서, 단정하던 어조를 한 박자 늦추었다. 적인걸을 두고 이른 「北斗以南, 一人而已」는 「一人斗以南」으로 줄였다. 여덟 자를 다섯 자로 압축하면서 어순을 뒤집었으되 뜻은 고스란히 남았다.
유종원의 「有樹環焉, 有泉懸焉」에서는 有와 焉 하나씩을 덜어 「樹環焉泉懸」 다섯 자로 만들었고, 왕발의 「賓主盡東南之美」에서는 盡과 之를 덜어 「賓主東南美」로 만들었다. 주자의 「半畝方塘一鑑開」는 「開方塘半畝」가 되었다. 원구의 開는 못을 판다는 뜻이 아니라 거울처럼 열린다는 뜻이었다. 주련의 開도 없던 것을 새로 만들었다는 말보다, 이미 있던 물가의 맑음을 다시 보이게 한다는 말로 읽을 수 있다.
어느 것이나 원구를 알면 뜻이 곧바로 열리고, 몰라도 하나의 문장으로 읽히도록 다듬어졌다. 집구가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하나의 창작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여하정이 묻는 것
정자의 이름도 그렇게 읽힌다. 여하정, 곧 余何亭이다. 「余何」는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처럼 들린다. 《맹자》의 「舜何人也, 予何人也」가 그러하듯, 이 물음은 자신을 낮추어 주저앉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말이다.
도연명도 벼슬길에 나서며 「伊余何爲者, 勉勵從玆役」이라 하였다. 「나는 도대체 무엇 하는 사람인가. 애써 이 일에 종사하고 있구나.」 여하정의 물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공무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현실 속에서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 못은 먼저 있었다
여하정은 옛 청수정 자리에 세운 것으로 전한다. 이름만 보아도 물이 먼저 있던 자리다. 1872년에 그려진 홍주 지도를 펴 보면 그 자취가 남아 있다. 가운데 동헌이 크게 자리하고 그 아래로 객사가 있으며, 동헌 위쪽 성벽 가까이에 못이 하나 그려져 있다. 여하정이 서기 스물네 해 전이다.
정자는 없던 자리에 새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이미 있던 물가에 얹힌 것이다. 여하정의 물음도 그와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 물음은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을 다시 보이게 하는 물음이다.
열 회에 걸쳐 읽어 온 열두 구절도 다르지 않다. 그 글자들은 백삼십 해 가까이 그 기둥에 걸려 있었다. 다만 우리가 지나쳤을 뿐이다. 글자를 바로 읽어야 풍경이 보인다고 첫 회에 적었다. 이제 그 말을 조금 고쳐 두고 싶다. 글자를 바로 읽으면, 늘 거기 있던 것이 비로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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