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데이터를 먹고 살 수는 없다
정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의 하나로 2029년까지 8.4GW(1단계), 2035년까지 10GW(2단계), 총 18.4GW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18.4GW는 원전으로만 한정하면 18개 정도에서 생산하는 발전량에 해당한다. 그럼 현재 이미 우리나라에 있는 데이터센터의 개수와 용량은 어느 정도일까?
국가에너지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일정 규모(150여평, 농구장 정도 크기) 이상의 데이터센터는 165개이고, 사용하는 전력 용량은 2GW 정도 된다. 여기에 빗대어 볼 때 3대 메가프로젝트에서 발표한 AI 데이터센터 1단계 8.4GW 계획만 해도 지금의 4배이고, 2단계까지 하면 무려 9배에 달한다.
정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막대한 전기와 물을 필요로 하고 지역간, 지역내 갈등까지 유발할 수 있는 이 사업을 하려고 하는가.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3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에 5조5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고, 이것이 우리나라 AI 데이터센터 산업의 성장과 생태계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1단계 8.4GW는 SK(5GW), GS(2.4GW), 네이버(1GW)가, 2단계 10GW는 SK(10GW)가 구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데이터센터 수요가 지금에 비해 이렇게 많이 증가할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사업 주체인 SK와 GS의 주요 사업이 인공지능과 관련되어 있지도 않은데 이들이 이 사업을 담당한다는 것은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 기피하는 데이터센터 건물을 지어서 빅테크 기업들에게 임대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에서도 혐오시설 같은 취급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10여년 전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전면 중단하면서 갈 곳을 잃은 폐기물들이 동남아시아로 간 적이 있다. ‘필리핀은 부유국의 쓰레기 매립지가 아니다. 한국 쓰레기를 되가져 가라’는 필리핀 환경 단체들의 외침이 겹쳐 떠오르는 것이 과연 과한 망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미국에서는 7월 18일 42개 주에서 142건의 AI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집회가 열렸고, ‘갤럽’은 미국인 70%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미 뉴욕주에서는 50MW 이상 신규 데이터센터 인허가를 1년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영등포구 양평동, 금천구 독산동, 용산구 이촌동 등에서 데이터센터 건립 추진을 반대하고 있다. 이런 반대 분위기 속에 8월 12일에 열린 서울 구청장협의회에서는 주거지에 데이터센터를 건립할 때 건축심의를 받도록 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데이터센터 서버를 24시간 가동하고 과열을 막기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과 물이 필요하다, 유엔의 학술전문기관인 유엔대학교 물환경보건연구소가 올해 6월에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작년 전세계 데이터센터가 연간 사용한 전력이 프랑스 연간 전력량과 비슷하며 물의 양도 80억명이 1년 넘게 마실 수 있는 양이라고 하니 상상을 초월한다.
AI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지구는 엄청나게 늘어나는 전력과 물 소비량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재미삼아 AI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볼 때 보이지는 않지만 지구에 큰 환경적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라도 떠올리면 좋겠다.
지난 8월 12일 경남 밀양에서 소방차가 논에 직접 급수를 할 정도였으니 기후위기로 인한 극심한 가뭄은 이제 생존 문제이고, 물 소비량을 고려하지 않는 데이터센터 확대는 생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게다가 데이터센터의 고용 창출 효과도 건설 기간에만 크고, 운영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이런 문제점 외에도 열섬 현상, 전자파 피해, 소음 피해 등 삶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들이 매우 많다.
이렇게 논란이 많은 데이터센터에 대해 미국의 뉴욕주와 서울시 구청장들도 제동을 걸고 있는데 반해, 충청남도는 SK가 당진에 건설 예정인 1GW급 AI 데이터센터 지원을 위해 전력과 물의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마련하고 인허가 절차까지 단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데이터센터는 10MW 이하의 소형인데도 구청장들이 규제 방안을 마련하는 데 반해, 당진에는 1GW(1GW=1000MW)로 무려 100배 이상의 규모인데도 충남도가 직접 나서서 적극적인 지원 약속을 하고 있으니 과연 누구를 위한 행정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AI와 반도체 산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못박고 나서, 속도전·선도전과 같은 전쟁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까지 써 가면서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길 끝에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무작정 달리도록 내모는 정부와 기업들은 국가경쟁력과 더 큰 성장과 행복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극한의 기후위기, 가뭄과 홍수, 그로 인한 식량 위기, 혐오 시설을 받아들여야 하는 변방 주민들의 불평등과 눈물이 보인다. 우리는 밥과 물을 먹고 살아야 하는 실체가 있는 생명체이다. 데이터를 먹고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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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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