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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념 공간의 명소화···바다 건너 제주서 답을 찾다

노진호 기자입력 2026.10.12 08:30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국가유산 활성화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가유산을 활용한 관광·체험 프로그램과 도시 재생 사업 등을 통한 생활인구 유입 촉진과 지역 경제 활성화가 숙제로 떠오른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지방소멸 위기 국가유산 대응전략’을 수립·발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홍성신문은 총 10회에 걸쳐 홍성 지역의 현주소와 지역 국가유산 답사, 타 지역 우수사례, 홍주의사총 문제 등을 보도한다. <편집자 주>

4·3 특별법은 2000년 공포됐고, 2003년 4월 3일 평화공원 첫 삽을 떴다. 드론으로 촬영한 공원 전경. 사진=제주4·3평화재단
4·3 특별법은 2000년 공포됐고, 2003년 4월 3일 평화공원 첫 삽을 떴다. 드론으로 촬영한 공원 전경. 사진=제주4·3평화재단
1949년 1월 초토화 작전으로 희생된 모녀를 형상화한 조형물 ‘비설’
1949년 1월 초토화 작전으로 희생된 모녀를 형상화한 조형물 ‘비설’

내포신도시에는 충청남도 보훈관이 있고, 그곳과 다리로 연결될 의병기념관도 건립될 예정이다. 홍성군은 홍주의사총의 국가관리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역 곳곳에는 김좌진·성삼문·한용운 등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이런 추념 공간들이 정작 홍성 사람들의 기억과 일상에 존재하는지, 다른 지역에서 찾아올 만큼 매력적인 공간인지는 의문이다.

2000년 특별법, 3단계 조성···올해만 25만명 발길

‘추념 공간의 명소화’에 관한 고민은 제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제주4·3평화공원’은 2002년 4·3중앙위원회에서 38만6000㎡ 규모로 기본계획이 의결된 후 현재까지 국비 700여 억원을 지원받아 3단계에 걸쳐 조성됐다. 1단계로 2004년까지 위령재단과 위패봉안실 등이 생겼고, 2008년 평화기념관의 문을 열었다. 또 2014~2017년에는 평화교육센터와 평화의 숲, 어린이체험관을 만들었다.

제주4·3평화재단 강봉효 공원관리팀장은 “대상지 선정은 접근성이 우선이었다. 제주 시내권 유휴부지가 마땅치 않아 이 장소가 낙점됐다”며 “이곳은 스물다섯의 어린 어머니와 두 살배기 딸기 희생된 곳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4·3의 발달과 전개 과정, 후유증과 명예 회복을 위한 운동 등을 알리려고 했다”며 “최근엔 평화교육에 더 힘쓰고 있다. 전국의 시·도교육청과 협약을 체결해 학생과 교원의 과거사 유적지 상호 관람을 유도하는 것도 그런 노력 중의 하나”라고 더했다.

제주4·3평화공원은 △위령광장, 1만5126위가 모셔진 △위패봉안실 △행방불명인 표석 △봉안관 △위령탑, 어른 남녀와 청소년 남녀·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어린아이를 상징하는 5벌의 수의 조형물로 당시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희생자를 달래는 △귀천, 희생자의 성명·성별·당시 연령·사망일시·장소 등을 새긴 △각명비, △비설(모녀상) △4·3평화기념관 △4·3어린이기념관, 철망 구조물에 희생자를 상징하는 3만개의 제주석을 채워 넣은 △문주 등으로 구성됐다.

제주4·3평화공원은 참 많은 이가 찾는 장소다. 올해만 지난 9월 27일 기준으로 25만9907명이 다녀갔고, 그중 20만여 명은 도외 방문객과 외국인이었다. 최근 10년의 연도별 방문객 현황을 살펴보면 2015년에는 16만1023명이 찾았고, 2016~2017년에는 20만1008명과 23만3276명이 다녀갔다.

‘4·3’ 70주년이었던 2018년 44만4813명으로 역대 최다 인원이 방문했고, 2019년에도 42만9300명이 찾았다. 2020년과 2021년 팬데믹의 영향으로 5만6481명과 8만1114명으로 줄었지만, 2022년엔 22만8134명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2023~2025년에는 각각 31만8600명, 32만9908명, 36만1296명이 이곳을 방문했다.

이곳의 위령제는 2014년 전까지는 재단에서 주관했지만, 국가추념일이 되며 정부가 개최하고 있다. 참여 규모는 해마다 1만명 정도다. 또 해마다 7월 셋째 토요일에는 유족회가 ‘행불인 진혼제’도 연다. 위령제와 진혼제 모두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제주4·3평화공원은 지금도 ‘조성 중’이다. 지난해 4월 28일에는 활성화사업 착공식이 열렸다. 이 사업은 291억원을 투입해 국제평화문화센터와 트라우마치유센터를 건립하는 내용이다. 착공식에서 김창범 유족회장은 “두 센터는 평화·인권의 가치를 세계 시민과 공유하는 글로벌 평화인권문화 허브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역사적 기억의 저장소···구슬프지만 평화로운 공간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건 지난 개천절 연휴 중이었다. 바다 내음이 담긴 가을바람을 맞으며 가장 먼저 향한 건 평화기념관이다. 기념관 1층에 있는 상설전시실은 4·3 당시 피신처로 활용된 천연동굴을 모티브로 한 ‘역사의 동굴’로 시작된다. 역사의 동굴을 지나면 ‘백비’를 마주하게 된다. 아직 그 이름을 다 채우지 못한 역사가 4·3이란 걸 보여주는 듯했다.

2전시실 ‘흔들리는 섬’에는 해방과 이후 불안한 정세, 4·3의 도화선이 된 3·1 발포 사건 등을 담았으며, 3·4전시실 ‘바람타는 섬·불타는 섬’은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시작된 무장봉기와 분단 거부, 초토화 작전과 학살 등을 전하고 있다. 특히 희생자들의 죽음을 다양한 아트워크로 표현한 전시물이 인상적이었다.

5전시실 ‘평화의 섬’과 6전시실 ‘기억의 터널’은 사건의 후유증과 진상규명 운동, 특별법 제정 등을 담았으며, 상설전시실 출구의 좌우 벽면과 천장을 희생자들의 사진으로 채웠다. 더불어 11명의 민간인이 토벌대에 의해 질식사한 ‘다랑쉬굴의 비극’, 희생자의 영령을 위로하는 ‘해원의 퐁낭’도 볼 수 있다.

제주4·3평화공원의 평화기념관은 동굴과 백비로 시작하지만, 후유증을 넘어 진실 규명 운동을 지나 희생자들의 사진으로 가득한 길로 나오게 된다. 기억하고 기록해야만 화해와 상생 역시 가능한 것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전시실 한편에는 소설가 김석범의 글이 새겨있었다. “반세기가 넘도록 기억을 말살당한 4·3은 한국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공포에 질린 섬사람들이 스스로 기억을 망각으로 들이쳐서 죽이는 ‘기억의 자살’인 것입니다.”

평화기념관 2층에는 기획전시실이 있다. 이곳에선 학생백일장 등의 공모 수상작이나 국내외 과거사 관련 전시를 한다. 강봉효 팀장은 “올해 초엔 오키나와 전쟁을 전했고, 몽골·대만의 역사를 알리기도 했다. 동아시아평화네트워크나 제주탐라미술인협회와 교류전도 한다”고 설명했다.

강 팀장은 이어 “4·3평화공원 전체 관람은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기념관 해설은 1시간쯤”이라며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등에서 발굴된 유해를 모신 봉안관은 꼭 들러보셨으면 좋겠다. 4·3 당시의 처참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라고 전했다.

평화기념관을 나와 위령탑으로 향했다. 참 많은 학생이 줄지어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위령탑과 귀천, 위패봉안실 등을 지나 들어선 곳은 봉안관이었다. 봉안관은 제주국제공항과 화북 등에서 발굴된 유해를 안치한 곳으로, 제주국제공항 발굴 현장이 재현돼 있다. 발굴로 수습된 유해는 426구이며, 그중 신원이 확인된 건 154명이다.

봉안관을 나와 찾은 건 아마도 제주4·3평화공원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이미지일지도 모를 ‘비설’이었다. 이 조형물은 1949년 1월 초토화 작전 중 거친오름 동쪽 눈밭에서 희생된 스물다섯의 여인과 그의 두 살배기 딸을 형상화했다. 이 유명한 조형물을 마주하기 위해 굽이굽이 돌담 사이로 들어가다 보면 제주에서 구전되는 자장가인 ‘웡이자랑’이 흘러나온다. 그렇게 마주하는 ‘비설’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눈밭에서 아기를 꼭 껴안은 여인의 모습과 그 뒤로 펼쳐지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잘 어울렸다. 구슬프면서도 평화로운 공간, ‘제주4·3평화공원’은 바로 그런 장소였다.

<이 기사는 2026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 지원을 받았습니다>

제주4·3평화공원 위령탑 주변엔 희생자를 기록한 각명비가 있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평화공원 위령탑 주변엔 희생자를 기록한 각명비가 있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는 1만5126위가 봉안돼 있다. 4·3 당시 희생자는 2만5000~3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는 1만5126위가 봉안돼 있다. 4·3 당시 희생자는 2만5000~3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4·3 유족들은 해마다 7월 셋째 토요일 ‘행불인 진혼제’를 연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4·3 유족들은 해마다 7월 셋째 토요일 ‘행불인 진혼제’를 연다. 사진=제주4·3평화재단
봉안관에는 제주국제공항 암매장지 발굴 현장이 재현돼 있어 학살의 실상을 볼 수 있다.
봉안관에는 제주국제공항 암매장지 발굴 현장이 재현돼 있어 학살의 실상을 볼 수 있다.
제주4·3평화공원 위렵탑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이분화된 대립을 화해와 상생의 어울림으로 표현했다.
제주4·3평화공원 위렵탑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이분화된 대립을 화해와 상생의 어울림으로 표현했다.
평화기념관에 들어서 역사의 동굴을 지나면 비문을 새기지 못한 ‘백비’가 누워있다.
평화기념관에 들어서 역사의 동굴을 지나면 비문을 새기지 못한 ‘백비’가 누워있다.
평화기념관 상설전시실 출구는 희생자들의 사진으로 채워졌다.
평화기념관 상설전시실 출구는 희생자들의 사진으로 채워졌다.
제주4·3평화공원은 올해만 25만명이 넘는 사람이 다녀갔다.
제주4·3평화공원은 올해만 25만명이 넘는 사람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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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호 기자

기획·특집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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