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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과 좋은 공간이 만날 때
앞 회에서 우리는 “九日湖之湄, 一人斗以南”을 통해, 여하정의 물가에 머무는 사람이 한가한 유람객이 아니라 공무의 무게를 아는 관인이며, 자기 자리를 의식하는 풍류의 주체임을 살폈다. 이제 주련은 “賓主東南美”로 나아간다. 물가에 머무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그가 누구와 함께 그 자리를 나누는가이다. 풍류는 혼자만의 감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좋은 공간은 좋은 사람을 만나야 비로소 깊어진다.먼저 구절을 보자. 賓主東南美(손님과 주인이 동남의 아름다움을 다하였다). 이 구절은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나오는
화첩기행 - 55
•개인전 13회 - 2025 김로이 초대개인전 (갤러리 미즈, 서울) - 2024 다양다종의 꼴 (CICA미술관, 김포) - 2024 루틴과 알고리즘 (CN갤러리, 서울)
은공일기 16
우리동네 생활사투리-303 “무데기”
-이니: 읍내 국밥집 말여, 트래비 방송 한번 나오더니 사람덜이 맨날 줄 선댜.-저니: 그리기. 한 무데기씩 떼루와서 뎀비는디, 엊그제 문짝 와꾸가 무너졌디야.는 무더기를 말한다. 한데 수북히 쌓였거나 뭉쳐있는 ‘더미, 무리’를 나타내는 말이며, 그것을 나타내는 단위 자체로 쓰이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아주 흔히 쓰이는 말로, 물건이건 사람이건 간에 눈으로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모여있다면, 이 표현의 대상이 된다.‘무데기’는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사이즈가 큰 편에 속하고, ‘뭉텡이’는 이보다
우리동네 유물 - 1:50,000 지형도(地形圖)
광복 이후인 1956년(檀紀 4289) 9월에 제작된 1:50,000 지형도로 본 유물은 홍성군과 주변 지역인 안면도(安眠島)와 대흥(大興)을 그린 지도이다. 예당저수지(禮唐貯水池) 조성과 서해안 지역의 간척 이전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지도에서 ‘갈산면(葛山面)’을 옛 이름인 ‘고도면(高 道面)’으로 표시했는데, 고도면이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된 것은 1942년이다.
병아리값에 내주고 황소값으로 다시 산 땅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이야기지만, 1960~1980년대 광천읍 벽계리에는 미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희미해졌지만, 부대 주변 마을에는 그 시절만의 풍경과 웃음과 애환이 있었습니다. 이 연재는 거창한 역사를 기록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미처 기록하지 못했던 홍성의 한 시대와 마을의 생활사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홍성군 광천읍 벽계리는, 해발 320m 지기산(智基山) 동쪽 기슭에 포근하게 자리 잡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국도 21호
“나라가 망하려 하니 근심과 분함 견디기 어려웠다”
신보균은 홍동면 수란리 왕지마을 출신으로 1906년 홍주의병에 참여해서 유병소 향관이라는 직책을 맡아 10여 일 동안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 과정에서 포로로 잡혔다. 이때 잡힌 포로는 80여 명으로 모두 경성으로 압송돼 재판받고 대부분 풀려나는데 신보균을 비롯한 9명만이 대마도로 유폐된다. 이들을 홍주9의사라고 부른다. 신보균은 1906년 6월 18일부터 1908년 6월까지 대마도에서의 유폐 생활을 일기로 남겼다. 표제는 같이 고생한 기록이란 뜻의 이라 이름 지었다. 4권 중 1권에 대해 지난달 25일 번역이 이뤄
지방소멸 위기 ‘발등의 불’···국가유산서 찾는 ‘희망의 빛’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국가유산 활성화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가유산을 활용한 관광·체험 프로그램과 도시 재생 사업 등을 통한 생활인구 유입 촉진과 지역 경제 활성화가 숙제로 떠오른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지방소멸 위기 국가유산 대응전략’을 수립·발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홍성신문은 총 10회에 걸쳐 홍성 지역의 현주소와 지역 국가유산 답사, 타 지역 우수사례 등을 보도한다. ‘홍성의 국가유산, 지역 발전 원동력으로 삼아야’라는 제목을 단 이번 기획의 시작은 지난해 8월 국가유산청이 발표한 ‘지방소멸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