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찾아 홍성에 왔습니다”···10년째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
중동에 위치한 시리아는 서쪽으로 지중해와 맞닿아 있고, 북쪽으로 튀르키예, 동쪽으로 이라크, 남쪽으로 요르단, 서남쪽으로 레바논·팔레스타인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 다마스쿠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지난(42) 씨는 시리아 최대 산업도시인 알레포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 시리아 북부에 위치한 알레포는 수도 다마스쿠스에 이어 시리아 제2의 도시이자, 오랜 세월 중동의 중요한 상업·교통 중심지로 자리해 온 도시다. 그러나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면서 평화롭던 일상은 전쟁의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
평범했던 일상이 전쟁터로 변하다
2012년부터 알레포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이 도시를 양분한 채 치열한 시가전을 벌였다. 약 4년 동안 이어진 ‘알레포 전투’는 시리아 내전을 상징하는 가장 참혹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대규모 공습과 포격으로 도시 곳곳이 폐허로 변했고,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지난 씨 역시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피란민 중 한 명이다.
지난 씨는 가족들의 소개로 현재의 남편 무스타파 씨를 만나 2012년 결혼했다. 무스타파 씨는 2005년부터 홍성폐차장에서 나온 엔진을 비롯한 자동차 부품과 컨테이너 등을 시리아로 수출하는 무역업을 했다. 당시 그가 법적으로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3개월이었다. 1년에 3개월은 한국에서, 2개월은 시리아에서 보내며 두 나라를 오가는 생활을 10년 가까이 이어왔다.
지난 씨는 영어 교사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은 부부의 고향 알레포를 하루아침에 두려움이 가득한 곳으로 바꾸어 놓았다.
포탄이 떨어져 건물이 무너지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다친 사람들로 병원은 늘 붐볐다. 환자가 너무 많아 제대로 치료받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아이들이 공부하던 학교도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지난 씨는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결국 부부는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알 수 없는 고향을 잠시 떠나기로 했다. 아랍어를 사용하고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주변 국가들을 알아봤지만 입국을 거부당했다. 남편이 오랫동안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한국으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부부에게는 태어난 지 두 돌도 되지 않은 아들이 있었다.
작은 가방 하나 들고 시작한 한국 생활
무스타파 씨는 2015년 가을 먼저 움직였다. 튀르키예로 간 뒤 중국을 거쳐 대한민국 홍성으로 향했다. 지난 씨는 어린 아들 아너스와 함께 공항에서 며칠을 보내며 어렵게 이동을 이어갔다. 세 나라를 경유한 긴 여정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마침내 한국에 먼저 와 있던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지난 씨의 손에는 작은 가방 하나가 들려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리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8일. 지난 씨는 한국에 도착한 그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정말 추웠어요. 눈도 펑펑 내렸어요.” 시리아에서는 1년에 몇 차례 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눈이 흔하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서 처음 마주한 눈과 매서운 추위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홍성에 도착했지만 가족이 머물 마땅한 숙소조차 없었다. 당시 남편이 홍성폐차장에서 일하며 지내던 작은 방에 함께 짐을 풀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부부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견뎠다. 잠시 머물다 시리아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국 생활은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당시 세 살이었던 아들은 막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곁에 다른 가족이 없었던 만큼 아이에게 세상은 엄마와 아빠가 전부였다. 남편은 긴 시간 일을 했고, 지난 씨는 고국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처음에는 한국 생활에 비교적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언어와 음식, 그리고 낯선 시선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면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마트나 거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외국인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 지난 씨의 외모와 옷차림, 그리고 히잡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느끼는 낯섦과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은 언어였다. 특히 병원에 갈 때 어려움이 컸다. 자신의 증상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의사의 설명을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와 셋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한국인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친구들이 병원에서 의사와의 의사소통을 도와주었다. 음식도 또 하나의 큰 어려움이었다. 할랄 음식을 구하기 위해 매달 서울까지 먼 길을 오가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식재료와 요리법을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음식에 아랍식 식단을 더해 가족에게 맞는 식사를 직접 만들어 갔다.
외롭고 힘든 시간을 견디며 한국어를 공부하던 중 알게 된 필리핀 사람을 만난 것은 큰 위로가 됐다. 두 사람은 영어로 고국의 상황과 타향살이의 외로움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낯선 한국 사회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지난 씨에게 힘이 됐다. 하지만 한국 생활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가장 그리운 사람, 다시 안아보고 싶은 아버지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아프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곁에 있어 줄 수 없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지난 씨의 어머니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고국의 불안정한 치안과 도로 통제로 인해 제대로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집 문 앞에서 떠나는 딸을 배웅하던 아버지. 알 수 없는 미래를 앞두고 슬픔이 가득했던 그 눈빛을 지난 씨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후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뇌경색을 겪었고, 반신마비로 몇 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셨다.
지난 씨에게는 한 가지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아버지를 직접 안아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타향에서의 삶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뿐 아니라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교육비 역시 부담이었다. 한국인 가정과 비교해 충분한 교육비 지원을 받기 어려웠고, 아들의 유치원 교육비로 매달 37만 원을 부담해야 했다. 이러한 어려움은 지난 씨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들이 건강보험과 의료비, 교육비 등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 씨는 히잡을 쓰고 생활하기 때문에 거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홍성의 거리에서 일부 사람들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무장단체 IS와 연결해 바라보는 시선은 큰 부담이었다. 그럴 때마다 지난 씨는 자신이 왜 한국에 왔는지를 떠올렸다. “우리가 한국에 온 이유는 폭력이나 갈등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평화를 찾아온 것입니다.”
평화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가는 가족
남편의 든든한 지원 속에서 지난 씨는 세 아이와 함께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 사회에 조금 더 잘 적응하기 위해 꾸준히 한국어를 공부했고, 한국어능력시험(TOPIK) 3급도 취득했다. 교육과 교양 분야의 다양한 강좌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고국의 언어와 문화를 잊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이 아랍어라는 모국어와 이슬람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와 문화·환경 그림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테니스 활동을 통해 시·도 및 전국 단위 대회에도 참가하며 메달과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지난 씨에게도 새로운 꿈이 생겼다. 앞으로 학업을 계속하며 교육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더욱 키워나가는 것이다. 아이들이 조금 더 성장하면 고국에서 했던 원래 직업인 교사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꿈도 품고 있다.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교육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지난 씨의 마음속에는 한결같은 대답이 있다. “우리는 평화를 찾아왔을 뿐입니다. 조국에 평화가 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하지만 그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이 다시 안전해진다면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국제 정세와 사회적 환경을 생각하면 그날이 쉽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지난 씨는 오늘을 살아간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신의 꿈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두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앞으로도 학업을 꾸준히 이어가며 살아가길 희망하고 있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그날이 올 때까지 가족과 함께 살아갈 오늘의 삶 역시 소중하게 가꾸어 가고 있다. 평화를 찾아 떠난 한 가족의 긴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씨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전쟁이 멈추고 가족들이 다시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날,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고향에서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홍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획·특집 담당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