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향교 칠의사’ 1894년 순절을 다시 묻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홍주향교 문묘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일곱 유생, 이른바 ‘칠의사(七義士)’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국제선도문화연구원(원장 김현문)은 지난 2일 서산시 한서대학교에서 ‘홍주향교 칠의사 조명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홍주향교 칠의사과 관련한 당시 기록과 후대 자료를 대조해 사건의 경위와 기억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고, 이들의 희생이 조선 후기 사회와 유교문화사에서 갖는 의미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1894년은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이 겹치며 조선 사회가 격변하던 시기였다. 충청도 내포지역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홍주향교 재생이던 오경근(吳景根)·최민지(崔敏之)·방세응(方世應)·방석규(方錫奎)·이준복(李準馥)·서종득(徐宗得)·최학신(崔學信) 등 일곱 유생이 목숨을 잃었다. 홍주향교에 남아 있는 현판(懸板)과 칠의비(七義碑)는 이들의 이름과 사건에 대한 지역의 기억을 전하고 있다.
학술대회에서는 당시 기록인 <홍양기사(洪陽紀事)>와 <갑오군정실기(甲午軍政實記)>, 후대에 작성된 <칠재생의사사략(七齋生義死事略)>, 칠의비 관련 족보 등을 비교·검토했다. 각 자료의 작성 시기와 목적, 기록자에 따른 서술 차이도 함께 살펴 기존의 인식을 사료에 비추어 점검했다.
김현문 원장은 “신념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이들의 죽음을 조선 유교사에서 주목할 만한 순절로 평가할 수 있다”며 “오랫동안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홍주향교와 칠의사의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는 자리”라고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칠의사의 희생을 지역의 추모 전통으로만 다루지 않고, 당시의 사료와 후대의 기억을 함께 검토했다는 데 의미를 두었다는 평가다. 학술대회에 참석한 오영택 전 명지대 특임교수는 “발표와 토론에서 제기된 쟁점은 향후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를 밝히고, 홍주향교와 칠의사의 역사를 연구·교육·문화 활동으로 이어가는 데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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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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