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수산물 제값 만들기 7년···“로컬 문제를 기회로”
올해 정부가 ‘국가 창업시대’를 선언하며 대기업·수도권 중심을 넘어 지방과 청년으로 확산되는 창업 모델을 제시했다. 홍성에서도 ‘집단지성’을 중심으로 26개 팀이 지역에 정착하는 등 로컬 창업의 새로운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 성과를 넘어 지속 가능한 구조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점검하고자 한다. 홍성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의 로컬 창업 우수 사례를 통해, 지원사업 종료 후에도 유지되는 청년 창업의 ‘자생력’과 ‘생존조건’을 총 11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웰피쉬&섬바다음식학교 정여울 대표
통영을 찾은 이유는 조금 특별하다. 7년째 지역에서 수산식품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한 청년 창업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청년 창업가를 키우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산식품 기업 웰피쉬의 정여울(35) 대표는 통영의 수산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며 사업을 이어왔다. 지난해에는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을 통해 ‘섬바다음식학교’를 열고 통영의 섬과 바다, 음식문화를 기반으로 청년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문제해결에서 시작된 로컬 도전
정 대표의 창업은 주변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데서 시작됐다. 대학생 시절 교양수업에서 모의 창업을 경험한 그는 창업의 재미를 알게 됐다. 당시 주목한 문제는 미용실의 불투명한 가격과 정보였다. “미용실에 가면 여러 추가 비용이 붙는 등 가격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 인근 미용실과 협약을 맺고, 소비자가 자신의 머리 상태를 먼저 알려주면 미용실과 가격을 협의한 뒤 학생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운영했어요.”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다. 학기가 끝난 뒤 열린 성과공유회에서 투자자들의 연락까지 받으면서 정 대표는 본격적으로 창업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관심을 갖게 된 분야가 식품이었다. 2016년 일본 여행에서 편의점에 진열된 다양한 수산식품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한국도 편의점이 많아지던 시기였어요. 편의점 한 코너에 수산식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후 현재의 남편을 만났고, 남편의 고향이 통영이라는 사실이 창업의 방향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됐다. 남편을 통해 통영의 수산업 종사자들을 소개받은 정 대표는 1~2년간 통영과 서울을 오가며 수산업의 구조와 유통과정 등을 직접 알아갔다. 사업 모델을 구체화한 뒤 2019년 개인사업자로 사업을 시작했고, 2020년 웰피쉬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창업에 나섰다.
정 대표가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는 ‘통영의 수산자원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거래 플랫폼을 만들고, 수산물을 제품화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레시피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갔다.
초기 사업 자금은 지원사업을 통해 마련했다. 서울시 푸드 인큐베이팅 사업 1기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청년창업사관학교 등 여러 지원사업에 참여했다. 정 대표는 “초기에는 자본이 크게 늘지는 않았다”며 “지원사업비를 가지고 직접 제품을 테스트해보는 정도로 시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웰피쉬가 개발한 수산식품 시제품은 10가지가 넘는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시장에서 살아남은 대표 제품은 ‘바다장어포’와 ‘멸치니 앤초비 소금’이다. 정 대표는 “통영에는 장어시락국 등이 유명한데 바다장어는 담백하고 고소하지만 잔가시가 걸리는 문제가 있어 소비가 많지 않았다”며 “그러던 중 반건조 장어는 잔가시가 걸리지 않았다. 이를 볶거나 조려 먹는 것을 보고 대중적인 양념을 입혀보면 어떨까 생각했고, 반응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두 제품 모두 완전히 새로운 아이템은 아니었다”며 “시장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 같다. 웰피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제품이기도 해서 애정이 깊다”고 말했다.
바다장어포는 미국 아마존과 캐나다 등 해외에도 진출했고 전국 GS편의점에 납품되기도 했다. 하지만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정 대표는 “소규모 공장에서 위탁생산을 했는데, 대형마트의 경우 유통기한이 일정 수준 남아있어야 하는데 생산 일정과 물량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며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서 상당히 위태로웠다”고 말했다. 수출 또한 코로나19 당시 물류대란과 맞물리며 어려움을 겪었다.
정 대표는 “영세한 기업 입장에서는 대규모 유통채널에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거래를 중단했고, 결국 자체 생산시설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렇게 통영시가 수산식품 임대공장 입주자를 모집할 당시 낙찰받았다. 그러나 공장 준공이 늦어지면서 기존 유통사들과의 거래가 취소되는 등 또 다른 어려움이 발생했다. 올해 공장이 준공돼 생산을 준비하던 중에는 최근 통영에서 발생한 수해로 공장 천장이 무너지는 피해까지 입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재 웰피쉬의 주요 거래처는 주로 지자체다. 지역 축제 등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상온 제품을 중심으로 개발해 온 웰피쉬의 특성상 제품을 기념품이나 선물용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는 점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지원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품 판매와 함께 다양한 사업을 병행한 것이 있었다. 정 대표는 “첫해에 도에서 1억원 규모의 펀드 투자를 받았고 이를 사업자금으로 활용했다”며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는 제품 개발과 판매까지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고 이후 필요한 자금은 대출을 통해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출 때문에 재무제표상 마이너스가 많은 편이지만 실제 사업의 흐름을 보면 적자라고만 볼 수는 없다”며 “제조·유통이 본업이지만 레시피 개발과 컨설팅 등 용역사업도 함께 하고 있고, 오히려 용역사업에서 발생하는 매출 규모가 큰 편”이라고 설명했다.
레시피 개발과 컨설팅 사업은 창업 초기부터 함께해 온 인연을 기반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 대표는 “서울에서 창업을 시작했을 때 함께했던 분들이 셰프나 관련 사업을 하는 분들”이라며 “자체적으로 직원을 크게 늘리기보다 파트너와 협업사를 많이 두고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는 7년간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닥치는 대로 해본 경험’을 꼽았다. 그는 “계속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대표자를 갈아 넣은 것 같다”며 “특별한 역량이 있었다기보다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기업은 아니지만 소셜벤처 인증을 받았고, 애초부터 통영 수산자원의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방향 아래 여러 시도를 하다가 시장의 트렌드에 맞춘 제품 개발로 방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람회도 다니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면서 경험치가 쌓였다”고 말했다.
섬바다음식학교를 시작한 이유 역시 웰피쉬의 창업 과정과 맞닿아 있다. 정 대표는 “초반에 통영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통영 사람들은 외지에서 젊은 사람이 와서 무언가 해보겠다는 것에 도와주고자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통영 사람들이 힘을 줬고, 그 덕분에 이곳에 정착해 계속 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며 “분명 나처럼 서울을 떠나 지역에 정착해 창업하고 자신의 일을 하고 싶은 청년들이 있을 텐데, 그런 친구들이 통영에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또 “통영은 예향의 도시로 예술과 문화 콘텐츠가 많고 섬 콘텐츠, 임산물과 농산물 등 다양한 식재료도 풍부하다”며 “그런데 정작 통영의 청년들은 먹고살 것이 없다며 지역을 떠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론 아닌 ‘관계’ 쌓는 것···어민과 청년 잇는 ‘섬바다음식학교’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섬바다음식학교는 섬과 바다를 이해하고 통영의 전통 명인과 해녀, 어부 등 현장 전문가에게 직접 배우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캠퍼스는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에 자리잡았다. 목포 ‘괜찮아마을’에 빈 여관 건물을 무상 임대해준 강제윤 시인이 자리를 내줬다.
정 대표는 “외부의 유명 강사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결국 현장을 직접 경험하는 것과 문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어 “정량화된 레시피 등 이론적인 접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며 “나 역시 통영을 떠나지 않고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사람들과의 관계였기 때문에 그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어른들에게 배워야 할 것은 그분들이 평생 쌓아온 경험과 지혜이기 때문에 충분한 대가를 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참가자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고, 어민들도 직접 자신의 경험을 전하고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첫해에는 2박3일 과정으로 운영했고, 올해는 3주 프로그램으로 확대했다. 수업은 월요일과 화요일에 진행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참가자들이 통영 곳곳을 자유롭게 다니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방식이다.
계절에 맞춰 멍게학과, 해초학과, 굴학과, 반건조생선학과 등이 운영된다. 예를 들어 멍게학과에 참여하면 멍게 생산자들과 일정을 함께하며 생산 과정과 생산자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바탕으로 요리를 개발한다.
최근에는 청년어업인연합회 등 보다 젊은 세대의 강사들도 참여시키고 있다. 정 대표는 “학기가 끝난 뒤에도 함께 자리를 하고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 핵심 가운데 하나가 포틀럭 파티”라고 말했다. 이어 “참가자들은 자신이 개발한 음식을 가져오고 강사들도 자신의 음식을 가져와 함께 즐긴다”며 “졸업한 기수들도 참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교류가 관계의 힘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에서 온 한 참가자는 부산밀면에 통영 식재료를 고명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했고, 통영 사량도에서 창업했다. 인천 영종도에서 생선구이집을 열 예정이었던 참가자는 반건조생선학과 과정을 거치면서 통영 생산자에게 직접 납품받는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정 대표는 로컬 창업에서 ‘자생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업을 하는데 왜 영리를 추구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지만 행정안전부에서도 자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로컬에 청년들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성공사례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웰피쉬가 그리는 최종 목표는 통영을 세계적인 미식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정 대표는 “통영은 작은 도시지만 국제음악제가 열리고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도 열린다”며 “봄과 가을이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도시”라고 말했다.
이어 “통영에는 고유한 음식문화도 있다”며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면서 전국의 수군과 식솔들이 모였고, 그 과정에서 전국의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문화가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통영만의 역사와 음식문화가 있기 때문에 미식축제가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한 곳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벤치마킹하는 도시는 스페인의 산세바스티안이다. 정 대표는 “산세바스티안은 세계적인 미식도시로 꼽히고, 도시 규모에 비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많은 곳”이라며 “그 안에서 미식문화를 이끄는 바스크 컬리너리 센터처럼 섬바다음식학교도 그러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관련 인프라를 만들어가는 단계”라며 “실질적인 수익은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데서 나오겠지만 결국 그 일을 하는 이유는 통영을 미식의 도시로 바꾸고 싶기 때문이고, 웰피쉬가 그 변화를 주도하고 싶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로컬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는 ‘좋은 어른’과 ‘꾸준함’을 강조했다. 정 대표는 “청년 혼자 자립할 수는 없다. 좋은 어른들이 중요하다”며 “로컬 창업은 너무나 힘들지만 동시에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업그레이드하고 싶다는 마음,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가는 경험은 다른 곳에서는 얻기 어려운 것”이라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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