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곰'할까? '포미'할까?
  • 박현태 기획위원
  • 승인 2019.05.08 10:47
  • 호수 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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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의 유통이 많아지면서 라이프 스타일 변화 또한 빠르고 다양해졌다. 한 때는 ‘트렌드 세터’라는 직업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빠른 변화의 시대에서는 트렌드를 예측하거나 이끌기 쉽지않다.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새로운 형태의 라이프 스타일이 생겨나고 그에 따른 신조어가 탄생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라곰’과 ‘포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라곰(Lagom)은 스웨덴어다.’적당한’ ‘충분한’ ‘딱 알맞은’과 같이 ‘균형’을 뜻하는 단어인데,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과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삶의 경향을 일컫는다. 한편, 포미(FOR ME)는 For health, One, Recreation, More convenient, Expensive 알파벳 머리 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다. 우리말로는 건강, 싱글족, 여가 활용, 편의, 고가격 이렇게 다섯 가지 항목을 말하는데, 자신이 가치를 두는 제품은 다소 비싸더라도 과감히 투자하는 소비 행태를 이르는 말이다. 라곰의 어원은 바이킹(Viking) 시대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스웨덴에서 중시되는 덕목으로 ‘팀을 둘러싼’을 뜻하는 말인 ‘라게트 옴(Lagetom)’에서 유래했다. 겉보기에 야심 찬 계획보다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중시한다. 또한 이러한 균형 잡힌 삶을 통해 자신이 필요한 것은 적당하게 소유하고, 자신을 둘러싼 지역 사회 또는 환경과 조화롭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쩌면 일본을 통해 전해진 ‘소확행’과도 닮아있다. 작가 ‘안나 브론스’는 자신의 작품 ‘라곰 라이프’ 에서 현대인들은 마치 우리에게 여분의 지구가 있기라도 한 듯이 자원을 펑펑 낭비한다며 이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문제이고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라고 말하고 있다. 자원에 대한 절약뿐 아니라 지나친 소비심리에 대한 권고로 받아들일 만하다. 한편, 작가는 ‘피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피카는 스웨덴의 커피 타임을 뜻하는 단어다. 하루 중 언제라도 차 한 잔하며 잠시 쉬는 시간을 의미한다. 물론, 무엇을 마시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휴식이 우선이다. ‘라곰’을 실천하는 삶과 소비행태는 이미 국내에서도 시작되었다. 차 한 잔의 여유가 강조되면서 홈카페 관련 상품은 이미 인기가 높아졌다. 매일 돈 주고 마시던 아메리카노 대신 집안에서 커피를 내리는 다양한 유형의 제품들이 홈쇼핑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원두커피를 내려 먹던 단순한 커피메이커뿐만 아니라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라곰’을 상호에 포함한 어느 인터넷 쇼핑몰에서 소개한 보틀(유리병)은 각종 SNS에 ‘라곰스타일’로 입소문을 타면서 상당한 판매량을 보였다. 이·미용 제품도 예외는 아니다. 원래 상품 이름은 ‘셀럽 마이크로 플렌징폼’인데 일명 ‘라곰 클렌징폼’으로 불리면서 이 아이템은 지난해 겟잇뷰티 뷰라벨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저
자극 성분을 사용하면서도 충분한 보습을 준다는 의도로 개발된 상품이다. 실제 포장 박스에도 ‘not too little, not too much’라 적혀 있다. 적당하면서도 부족하지 않은 ‘라곰’의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포미(FOR ME) 관련 상품도 인기가 높다. 홈쇼핑에서는 건강, 뷰티, 여행 등의 카테고리에서 두드러진 소비자의 관심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건강식품의 경우 과거에는 노년층에서만 인기가 높았지만, 지금은 2~30대 젊은 고객들로 소비층이 확대되고 있다. 전통적인 건강식품 홍삼뿐만 아니라 젊은 소비자를 위한 렌틸콩, 건강즙, 보양식 등 아이템 종류도 다양해졌다. 모든 홈쇼핑사가 렌탈 방송으로 소개하는 안마의자 또한 부모님께 선물하는 용도 외에도 젊은 고객 자신이 직접 사용하기 위해 장만하기도 한다. 뷰티 관련 상품에서 포미를 상징하는 아이템 중 하나는 ‘LG프라엘’이다. 전체 구성을 다 살 경우 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가격이지만,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겠다는 소비자는 적지 않았다. 이 밖에도 LED마스크 콘셉트의 피부관리용 뷰티 디바이스는 이미 여러 종의 제품이 홈쇼핑 방송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여행에도 포미 바람이 불었다. 홈쇼핑 여행상품은 가족이나 단체 손님을 대상으로 한 패키지 상품을 주로 판매했는데, 최근에는 호캉스 상품이나 5백만원대 크루즈 여행 등 럭셔리 아이템도 방송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뮤지컬 티켓 같은 공연상품이 홈쇼핑 방송을 타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방송 때마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문화 상품을 소비하는 고객 경향과 맞물려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포미’가 반드시 자신을 위한 사치스러움을 뜻하는 것인가? 그렇진 않다. 포미 머리글자 중 하나가 ‘비싸다(Expensive)’는 어감을 가지고 있지만, 포미족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비싼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가치 있는 제품일 경우에만 비싸더라도 과감한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가치가 없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린 상품은 철저히 배제하는 것 또한 포미족의 성향이다. 따라서, ‘사치스럽다’가 아니라, ‘가치스럽다’가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라곰’과 ‘포미’ ‘지나치지 않은 적당함’과 ‘비싸도 과감한 투자’이 두 가지는 어찌 보면 서로 섞일 수 없는 다른 뜻 같지만, 다시 잘 살펴보면 함께 어우러지는 의미이기도 하다. 라곰의 결과로 얻어진 잉여, 그 잉여가 돈의 개념이든 시간의 개념이든, 그 남는 것으로 자신을 위해 ‘포미’하겠다는 것이 지금의 경향이니 말이다. 그동안 홈쇼핑 이미지가 박리다매, 대중적 아이템, 저가 제품에 머물러 있었다면 보다 개성적인 고객들의 가심비를
자극하기 위해 더 섬세하고 적극적인 상품개발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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