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달려가면 무지개 끝에 닿을 수 있을까?
  • 남도연 기자
  • 승인 2018.04.30 10:43
  • 호수 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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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본 적 없는 디즈니 월드의 길 건너
ⓒA24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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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스를 끝까지 벌려 가장 변두리의 이야기를 따라 그리는 감독, 션 베이커의 신작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드디어 국내 개봉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확고한 작품 세계를 쌓아가고 있는 그의 시선은 사춘기가 끝나가는 청년의 일상에서 시작해 중국인 이민자, 포르노 배우, 트랜스젠더에 이어 모텔 방을 전전하는 ‘숨은 홈리스(hidden homeless)’에게 닿았다. 이번엔 누구의 눈을 빌려 이야기를 담아 왔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는 환상의 나라 디즈니 월드의 건너편, 상상해본 적 없는 그 그늘에는 오늘도 쓸데없이 신나는 무지갯빛 모험이 펼쳐지고 있다.

 

환상의 나라에 가려진 플로리다의 그늘

“무니! 스쿠티!” 디즈니 월드 길 건너에는 이름을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만 듣고도 신나서 눈을 반짝이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다. 주인공 무니의 집 주소는 ‘US 하이웨이 192’를 따라 줄지어 선 싸구려 모텔 중 보라색 ‘매직캐슬’ 323호. 집을 얻을 목돈이 없어 월세보다 비싼 모텔 방을 전전해야만 하는 ‘숨은 홈리스’의 2세인 셈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팍팍한 세상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오늘도 모텔의 주차장에서, 관리실에서, 길 건너 버려진 콘도나 풀밭에서 그들의 모험심을 발휘하며 즐겁게 지낸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놀이라는 것들이 참, 그렇다. 이웃 모텔 ‘퓨처 랜드’에 새 차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신나게 달려가서 한다는 일이 고작 2층 난간에서 자동차 창문에 침 뱉기 놀이다. 하루는 모텔 저 멀리 버려진 콘도에 가서 벽과 가구를 때려 부수며 그들만의 별난 모험을 펼쳤다가 또 하루는 새 친구 ‘젠시’에게 들판의 소 떼를 사파리라고 소개하는 귀여운 상상력을 발휘한다.

시종일관 장난스럽고 매일같이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는 무니와 친구들의 행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질 즈음 딸 못지않게 철없는 엄마 ‘핼리’의 안하무인에 결국 물음표 붙은 실소가 터졌다. ‘엄마 맞아?’ 쭉 지켜보니 엄마는 엄마였다. 무니가 겁 없는 모험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조금 허술하긴 해도 엄마라는 핼리의 울타리 덕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벼랑 끝에서 핼리가 선택한 희생은 그 울타리마저 넘어트린다.

매직캐슬을 관리하는 매니저 ‘바비’는 모텔촌 어린아이들을 지키고 핼리가 더 엇나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친절과 연민은 매니저라는 역할 뒤에 숨긴 채 철저히 외부인 자리를 지키려 애쓴다. 같은 건물 101호에 살고 있을지라도 다른 호실 사람들은 이웃이 아니라 언제 쫓아내야 할지 모르는 손님일 뿐이라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게 곧 모텔을 지키는 방법이자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 집에 가야지. 여긴 손님들 차 들어오는 길이잖아. 악감정은 없어. 친구들, 좋은 하루 보내.” 호텔 로비 앞에서 새들을 쫓아내는 그의 얼굴이 괜히 측은하다.

 

ⓒA24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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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핼리와 무니에게

회화에 구스타브 쿠르베가 있다면, 영화에서는 션 베이커라고 해야겠다. 어떠한 연민이나 동정의 시선 없이 사실 그대로의 사건을 이어 붙여 보여주는 모텔촌의 일상은 드문드문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 일상에 동행하게 된 나는 어느새 이들의 선택을 이해하게 됐다. 최선을 다해도 되지 않을 땐 차선밖에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니까. 이 막막한 현실에 내던져진 무니는 넘어져도 자라는 나무를 보면서 넘어졌어도 다시 달릴 줄 아는 씩씩한 어린이로 자랐다.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도망치는 숨은 홈리스 2세, 우리의 무니. 왠지 ‘우리의’ 무니라고 부르고 싶다.

무니가 사는 디즈니 월드의 그늘에도 때로 해는 비추고 무지개가 떠오른다. 그 끝에 황금이 없다는 걸 알게 돼도 무지개는 여전히 아름답듯이 결말을 알 수 없어도 삶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 무니가 결국엔 행복하길. 아니, 그저 무사하길. 그렇게 바람을 줄여가다가 달려가는 무니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생각했다. 이 세상 모든 무니들이 부디 무지개의 끝까지 달려서 보물을 찾아내길. 돌아온 집에는 핼리가 기다리고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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