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녹였더니 대박 나더라?
  • 박현태 기획위원
  • 승인 2018.04.05 09:29
  • 호수 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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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2018년 4월호) 시선 칼럼

봄꽃이 만발하고 잔디가 푸릇푸릇해지는 봄이다. 만물이 생동하며 무럭무럭 자라는데, 왜 내 머리카락은 쑥쑥 자라지 않는 걸까? 탈모 인구의 고민이 늘면서 발모 제품 또한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으며 최근 스트레스성 탈모까지 더해지면서 젊은 연령대의 고객도 크게 늘고 있다.

ⓒ월간홈쇼핑
ⓒ월간홈쇼핑

퇴출을 눈앞에 둔 발모 비누

오래전, 비누 형태의 발모 상품 판매를 맡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해당 상품은 경쟁사 방송을 통해 1년 넘게 판매되고 있다가 매출이 떨어지면서 퇴출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한마디로 팔릴 만큼 팔렸고 비슷한 경쟁상품들의 등장으로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제조사 직원이 조금은 겸연쩍어하면서 이 비누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으로 마케팅 전략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경쟁사에서만 판매해왔던 탓에, 단물이 쏙 빠진 껌처럼 된 이 시점에서, 나에게 판매의뢰를 맡기게 된 것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그런 서운함에 시간을 낭비할 만한 사치스러움은 통하지 않는다. 어찌 되었건 다시금 이 상품의 장점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려는 방법을 연구하면 되는 것이다. 무엇으로 발모제 비누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을 것인가?

발모 비누의 강점, 어떻게 표현할까?

요즘 광고하는 대부분의 샴푸 역시 탈모 예방을 강조하고 있다. 내가 판매할 이 비누는 멕시코 고산지대에 자생하고 있는 식물을 주원료로 만든 것인데 ‘에스피노질리아’라고 불리는 이 식물은 발모에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된 상태다. 물론 그 밖에도 몇 가지 종의 다양한 식물들을 섞어서 배합과정을 통해 비누가 만들어진다. 모발 관련 상품들은 저마다의 장점들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발모 비누의 최대 강점은 무엇일까? 천연재료로 만들었다는 것? 그래 그건 틀림없는 장점이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천연재료로 만든 것이 틀림없다며 백 번쯤 외쳐대면 그만인가?

특히 부담됐던 것은 나의 방송이 경쟁사의 방송과 철저하게 비교당할 상황에 있다는 점이었다. 뭔가 새롭고 뭔가 특별해 보이고 싶은데, 방법이 없는 걸까? 길을 걷다가도 특히 미용실 앞을 지날 때면, 창문 너머로 안을 들여다본다. 샴푸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모발이 적어 어떻게든 자기만의 헤어스타일로 단점을 커버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며칠 동안 머리카락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탈모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노력하고 내가 판매할 발모 비누를 통해 머리카락이 자라는 상상을 하다 보니, 이젠 내 머리카락이 갑자기 쑥쑥 자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발모 비누를 물에 녹여봐?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미용실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머리가 많이 자라서 손질할 때가 되기도 했고 이참에 미용사와 대화도 나눌 겸 해서 말이다. 머리 손질을 하는 동안 탈모에 관한 이야기, 발모제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누었다. 늘 헤어스타일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발모제에 관한 정보에도 늘 민감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제품은 효과가 좋다는 소문은 있지만, 매일 짬짬이 모발에 발라줘야 하니 불편하다는 이야기, 또 어떤 제품은 너무 화학성분 냄새가 많이 나서 불편하다는 이야기 등 짧은 시간 미용사가 줄줄 외우다시피 늘어놓는 발모 관련 제품 종류만 해도 상당하다. 당장 탈모 클럽이라도 하나 차릴 기세다.

주거니 받거니 미용사와 얘길 나누면서 ‘요즘은 남자들도 대부분 이발소 대신 미용실을 많이 찾긴 하지만 내 경우는 미용실 올 때마다 파마 약 냄새가 거슬린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랬더니 피식 웃으면서 ‘차 한 잔 드릴까요?’ 한다. ‘네, 커피 주세요’. 잠시 후, 미용실 직원 하나가 커피 한 잔을 내 앞에 내려놓는다. 나는 원두커피보다는 달곰한 맛의 커피믹스를 더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오늘은 바빴는지 제대로 젓지를 않아서 커피잔 가장자리와 수면에 녹지 않은 커피 가루가 군데군데 보인다. ‘별 거 아닌 커피 한 잔이지만, 그래도 좀 정성스럽게 저어서 잘 녹여 올 것이지…’ 하는 생각에 커피잔을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 혹시 발모 비누를 물에 녹여봐?

유리컵 속의 물회오리, 그래 이거다!

커피믹스 안에는 보통 3종류의 원료가 들어있다. 커피, 설탕, 크림. 그중 잘 녹지 않는 것이 커피다. 오늘처럼 물에 둥둥 떠 있으면서 끝까지 살짝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판매할 발모 비누 역시 여러 가지 식물재료가 섞여 있다. 그렇다면 이 비누를 물에 풀어 녹이기 시작하면, 각 식물 성분별로 제각각 풀어지면서 물속에 층이 생기지 않을까? 집으로 달려와서는 샘플로 받은 비누의 한 부분을 떼어내 물에 녹여 보았다. 잘 녹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물을 데워 비누 조각을 넣고 열심히 저어 보았다. 아주 명확하진 않지만, 찬물에서보다는 훨씬 더 층 분리가 잘 일어난다. 유리컵 속의 물회오리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빨리 이 장면을 방송에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벌써 심장이 망치질을 시작하는 느낌이다. 그래, 바로 이거다!

진심으로 고민하면 방법이 보인다

방송 전날, 발모 비누제품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비커 몇 개와 유리 막대를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음날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진짜 자연에서 얻어진 식물 원료들만을 뭉쳐서 지금의 비누 형태로 만들었다면, 다시금 풀어헤쳐 보자는 거죠. 정말 식물로만 만들었다면, 여러 종의 식물들, 그 열매나 나뭇잎들의 무게에 따라 가라앉은 정도의 차이가 생기면서 명확하게 층 분리가 일어날 겁니다. 물론, 가벼운 나뭇잎 성분들은 수면 위에 뜰 것이고, 중간 부분엔 맑은 물이 층을 이루겠지요."

방송이 끝나자, 발모 비누 협력사 직원이 씨~익~ 웃으며 다가온다. “왜 이제껏 1년을 넘게 방송해 오면서, 물에 녹여 볼 생각을 못 했을까요?” 얼음은 녹아버리면 쓸모없지만, 이 비누는 녹였더니 대박 나더라! 진심으로 고민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 방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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